[이홍구 칼럼] 간송, DDP, 동대문시장

최고관리자 0 279 2017.03.23 15:24
오랫동안 우리들 삶의 일부였던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개관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몇 해 동안 건설공사가 진행되던 대형 우주선 같은 건물의 개관에 때맞춰 간송미술관의 대표적 소장품 특별전시가 시작되어 새삼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느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은빛 비행선형 디자인플라자 건물의 위용은 4840억원의 투자와 4만5133개의 각기 다른 크기의 알루미늄 조각들을 이음매 없이 이어낸 기술력 등 문화대국과 기술대국으로 비상하는 한국의 위상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한 세대 우리 한국이 세계사의 주류에 합류하겠다고, 세계화 물결의 앞줄에 서겠다고 투입한 국민적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당대 최고 건축가의 한 사람인 자하 하디드에게 설계를 맡긴 결정이 우리 사회의 세계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와 대화, 주변과의 단절이 없는 공간, 창조와 나눔의 공간을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곡선 건축으로 이룩하겠다는 자하 하디드는 바로 우리 공동체의 규범 및 정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부자여도 가난해도 이런 훌륭한 공공장소에서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그녀의 말이 이러한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다.

 원래 민족공동체를 지탱하려면 문화적 연속성과 구성원 사이의 연대성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600년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국내외로 상권을 뻗어가는 동대문시장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공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DDP가 우리 국민의 연대성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우리 민족공동체가 국민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힘입어 미래로의 비상을 기약하는 DDP가 문을 여는 바로 그날 그곳에서 문화로 나라를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기념전의 막이 오르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62) 선생은 이미 우리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민족문화 보존의 전설적 선구자다. 일제강점기 간송의 역사적 노력을 밑받침한 것은 첫째, 제국주의시대의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사회의 정체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겨레의 혼과 꿈을 담고 있는 문화, 특히 문화재의 보존과 계승이 절대적 필요조건이라는 그의 신념이었다. 둘째, 간송은 불원간에 나라의 주권을 반드시 되찾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셋째, 군국주의 일본이 세계대전으로 향해 폭주하는 위기를 간송은 오히려 기회로 감지했던 것이다.

 나아갈 목표가 확실하다면 위기는 동시에 기회를 수반한다는 것을 간송은 구체적으로 실증했다. 1936년 일본의 군국주의체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일본인 손에 넘어갔던 혜원(蕙園)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할 때 일본을 떠나 귀국하려는 영국인 갓스비에게서 세계 제일의 고려청자 소장품들을 간송은 일괄로 사들였다. 특히 창씨개명과 일본어 상용령으로 민족문화 말살정책이 극도에 달했던 1940년 여름 간송은 ‘훈민정음’을 구입하는 데도 성공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럴수록 문화 보존과 이를 통한 국민과의 소통은 지속돼야 한다는 간송의 철학과 모범은 자손들과 후학들에게 충실히 전수되고 있다. 70년대 초 ‘삼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한국 정치가 요동치던 시기에도 간송미술관은 71년 겸재(謙齋, 鄭敾)전, 72년 추사(秋史, 金正喜)전, 73년 단원(檀園, 金弘道)전을 춘추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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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문명에서든지 시장은 바로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경제활동의 중심이다. 동대문시장도 지난 100여 년 우리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6·25전쟁 이후 실향민의 터전이던 청계천 판자촌이 60년대 들면서 봉재를 발판 삼은 평화시장으로 이어졌고 80년대엔 전국 최대의 의류도매시장으로 팽창했다. 90년 이후에는 청계천 복원과 대형 쇼핑몰 시대가 겹치며 연매출 15조원대의 대규모 국제적인 시장의 면모를 갖추고 하루 100만 명, 특히 1년 250만 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이 찾아오는, 또한 젊은이들의 창조 기업이 실험되고 한류 공연이 심야까지 이어지는 관광특구로 발전했다.

 성북동의 간송미술관, 동대문시장과 DDP는 이미 복원된 서울성곽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역사와 소산(所産),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이웃과 활력, 그리고 통일된 공동체를 꿈꾸며 창조력을 가다듬는 가운데 새봄이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이홍구 칼럼] 간송, DDP, 동대문시장
최고관리자 0 279 2017.03.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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